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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과 정보들/특별한 경험

큰아버지의 장례식_230107~09

by 쭌스파 2023. 2. 8.

조금은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다. 불과 저번 달이었다. 큰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아버지께 들었던 큰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일찍이 가족들을 위해서 일을 위해 달려오시던 분이셨다.

할아버지처럼 엄청나게 활동하시다가, 결국 큰 낙상 사고를 당하셨었다.

2019년쯤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그리고 이후 병원에서만 쭉 지내셨다.

반신마비가 오셔서 움직이실 수 없으셨기에...

와이프와 결혼 하기 전에 방문하였었다. 알아 보시지만 말씀은 못 하셨다.

그리고 나서 내가 아이가 생기고 육아를 하고 회사를 다니던 도중에도 한 번을 뵈러 가진 못했다.

그리고 결국에 돌아가셨다는 소식만 듣게 되었다.

 

막상 일이 벌어지고 나니, 이전과는 다르게 난감한 느낌이 먼저였다.

이전에야 나만 준비하고 내려가면 끝났지만, 이번에는 와이프와 아들이 있었다.

와이프와 상의한 끝에 처가에 아이를 잠시 맡기고 둘만 내려가는 것으로 했다.

그 마저도 나는 내려가서 쭉 있고, 와이프는 일찍이 올라가서 아들을 돌보는 것으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정리가 끝나는대로 아들을 처가에 맡기고 광주로 내려갔다.

마침 아버지께서 올라오셔서 우리 내외를 태워서 장례식장으로 가주셨다.

 

코로나 이후의 장례식장은 역시나 조용했다.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큰아버지께서 너무 오래 누워계셔서일지...

큰형은 허리가 좋지 않은데도 상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자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친인척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첫 날은 사람이 많이 없어 우리 가족 모두 자리를 비우는 것으로 했다.

 

근처 무인텔을 갔는데...가 본 사람이 나 뿐이라서 좀 난감한 그런 상황이라...

결제하는 법, 사용법에 대해 간략히 설명드린 후 나와 와이프는 다른 방으로 가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날, 큰아버지 입관이 오전 10시였는데, 시간 상으로 맞지 않아 아버지만 장례식장 내려다드리고,

어머니와 나는 와이프를 데려다주러 송정역으로 갔다. 그리고 와이프 올려 보내놓고 다시 장례식장.

하지만 어머니 컨디션도 안 좋아 보인다. 독감에서 나으신 지 얼마 안되셔서 그런 거 같았다.

아버지와 상의 끝에 어머니도 여수로 보내드리고, 아버지, 나, 그리고 작은아버지 셋은 자리를 지켰다.

 

특별하게 야외 활동을 하지 않는 큰 형, 그리고 결혼을 준비하다 큰아버지의 사고로 계속 미루고 있는 큰 누나.

예상보다 손님은 많지 않았고 친인척으로 옆에서 돕고자 했던 아버지, 작은아버지, 나 모두 방에서 잠들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잠시 나왔는데, 밤 사이에 장례식장 문을 닫아놓고 주무셨나보다. 문이 닫혀있었다.

그리고 발인 시작. 내가 아는 큰아버지는 등치가 있으셨는데, 꽤 작은 관에 들어가 계셨다.

하긴......죽은 다음은 화려한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만감이 교차하며 화장터로 향하였다.

그래도 큰고모를 제외한 형제자매는 다 오셨다. 큰고모야...오지 못하셨던 이유가 있었다.

 

화장터에서 대기 하던 중에 돌아가신 작은 고모가 계신 곳에 잠시 갔다. 작은 고모 딸인 사촌 친구가 데리고 갔다. 

그리고...더 충격적이었던 건, 큰고모의 큰누나가 그 곳에 있었다.

솔직히 멍했다. 아니 둘째 누나, 셋째 누나만 보이길래 아 바쁘구나 싶었는데 누나가 왜 거기 있는거지?...싶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큰 고모는 큰 누나가 죽고 나서 있는 곳이기에 더 힘드실까봐 오지 못하셨던 거였고...

큰 누나가 죽고 나서 내가 모를 수 밖에 없었던 건 날짜였다.

19년 11월이었는데, 내 결혼이 19년 12월이다 보니...아버지도 못 가시고 뒤늦게 찾아온 그런 상황이었다.

아버지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삼촌이 이제 와서 미안하다.' 나도 충격이었지만 아버지도 힘드신 거 같아서 아무말 못하고 눈물을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화장터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 엄마(6살 차이 밖에 안 나서 세대 공감되는 그런 작은 엄마)께 물어보니,

결혼 전이라서 날 받아놓고 계셨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도 못 가셨다고 들었다.

충격적이라 너무 당황스럽고 할 말이 없어 멍하니 큰아버지의 화장 절차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큰 형이 몸 상태가 무리가 너무 온 거 같았다. 결국 영정사진은 내가 들고 계속해서 다음 절차를 진행했다.

(큰 형은, 군 시절에 업무 수행 중 다쳐 국가 유공자 및 장애인 등급을 판정받았다.)

큰아버지의 유골함이 나오는데...뭐랄까...죽으면 진짜 아무 소용 없다. 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을 뿐.

하지만, 내가 슬펐던 건 아버지의 울먹이는 소리. 큰아버지를 보낸다라는 것에 대한 슬픔에 대한 공감.

마지막 약소화된 탈상까지 마무리 하고, 식사 자리로 이동하였다.

 

그 사이에 큰어머니와 큰형은 병원으로 바로 이동하였다.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안쓰럽기도 하다.

이제 40이 넘어 몸이 점점 회복보다는 힘들어 질텐데...휴......

장례식장을 마무리하고 엄마한테 전화하는데,

'장례식 갔다 오면 편의점이든 어디든 사람 많이 있는 곳 들려야된다. 네가 귀신 안 믿는거 알지만 꼭'

' 그냥 오빠 해서 나쁠 거 없으니까 그냥 해'

엄마 말 뒤에 내동생이 이어서 하는 말...평소 이과생답게 안 믿는 나지만 괜히 찜찜해져서,

사람도 만나고 카페도 들렸다가 저녁에 집에 도착하였다.

 

나이들어 간다는 것. 결국 내 주위에 계시던 어른들이 하나둘씩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 같아 조금은 슬펐다.

그러기에 아버지를 조금 더 존경하게 되었고, 어머니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3남4녀의 넷째로 태어나서도 가족들 다 챙기며 70이 되어가는 나이에도 계속해서 노력하고 계신 아버지.

혼자 지속적으로 건강 챙기시고 운동 하시는거 보면 대단하신 거 같고 존경스럽다.

아들이 태어나보니 엄마가 참 고생 많았겠구나..나도 내 아들보면 저랬을텐데..싶은 모습들을 보며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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